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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la 2015 : Intramuros & Rizal Park 본문

Footprint in the World/2015 CEB&MNL.PH

Manila 2015 : Intramuros & Rizal Park

Trippe_Park 2015.05.02 17:49

 

이전글 : Ninoy Aquino Int'l Airport - Terminal 3 (NAIA T3, MNL/RPLL, 11 MAR 2015)

 

 

 

이제 본격적으로 필리핀공화국 (Republic of the Philippines, Republika ng Pilipinas)의 수도인 마닐라특별시 (Special Capital City of Manila, Lungsod ng Maynila)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렌터카를 이용해서 처음 찾은 목적지는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 호세 리살 (José Rizal)을 기리기 위한 리잘공원(Rizal Park, Liwasang Rizal)이었습니다.

리잘공원은 필리핀의 독립기념관과 같은 유서깊은 장소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필리핀 국민들의 자부심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필리핀 정부는 리잘공원에 본 동상을 정면에서 촬영하는 행위에 대해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고 할 정도니 이곳의 상징성은 엄청나다 하겠습니다)

 

호세 리살, 즉 호세 프로타시오 리살 메르카도 이 알론소 레알론다 (José Protasio Rizal Mercado y Alonso Realonda)은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고 하는데요.

그의 유골도 이곳 기념비에 안치되어 있으며, 기념비는 24시간 4교대로 군인 (근처에 주둔하는 필리핀 해군본부소속)들이 경비한다고 합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필리핀국기 (National Flag of the Philippines, Pambansang Watawat ng Pilipinas)를 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요.

흔히 세 개의 별과 태양 (Three Stars and a Sun, Tatlong Bituin at Isang Araw)이라 불리는 이 국기에 대한 필리핀 국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한것 같더군요.

(사소해 보이는 표지판이나 안내판에도 필리핀 국기나 국기 문양의 국장이 그려져 있었는데요. 심지어는 지나가던 지프니까지...)

우리나라는 요즘 국경일에도 국기를 내걸지 않는다는 뉴스기사를 심심찮게 접하곤 하는데, 왠지 모르게 부러웠습니다.

 

필리핀국기는 각각의 색깔과 문양을 통해 이상, 용기, 평화, 평등, 루손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및 스페인의 통치를 거부한 8개의 주를 상징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필피핀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Famy Aguinaldo, Emilio Aguinaldo)에 의해서 최초의 국기가 도안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이나 국가위기상황이 생겼을때에는 국기의 상하를 뒤집어서 계양하도록 하는데, 이는 '어떤것 보다도 용기와 애국심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899년에 발발한 '필리핀-미국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필리핀을 침공했을당시에 실제로 국기의 상하를 뒤집어서 계양했다고 합니다)

 

- 붉은색 : 이상, 평화, 진실, 정의

- 빨간색 : 애국심, 용맹

- 흰색 : 평등, 박애

- 세 개의 별 : 루손 섬 (Luzon), 비사야 제도 (Kabisayaan, Visayas), 민다나오 섬 (Mindanao)

- 태양의 여덟 개의 햇살 : 마닐라 (Lungsod ng Maynila), 카비테 주 (Lalawigan ng Kabite), 불라칸 주 (Lalawigan ng Bulakan), 팜팡가 주 (Lalawigan ning Pampanga),

                                   누에바에시하 주 (Lalawigan ng Nueva Écija), 타를라크 주 (Lalawigan ng Tarlac), 라구나 주 (Lalawigan ng Laguna), 바탕가스 주 (Lalawigan ng Batangas)

 

 

 

마닐라에 도착할때부터 끄물끄물거리던 하늘은 결국 인트라무로스 (Intramuros)에 도착한 저에게 비를 선물(?) 하였고, 우산이 없는 저는 비를 맞으며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고 300년 이상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식민지의 정치, 군사, 종교의 중심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사진속 건물 양식이 상당히 이국적이죠)

이곳은 원주민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중국해적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거대한 요새와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래서 인트라무로스의 뜻이 스페인어로 '벽안에서'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주로 카톨릭교회, 카톨릭 대학, 수도원, 수도회, 총독관저 등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들 건물에 대해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필리핀 역사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녀와서 이것저것 찾아보려니 너무 힘이드네요)

 

우선 간단히 필리핀 역사 중에서 식민지 관계부터 이해하는것이 필요해 보이니 해당내용은 아래에 간단하게 요약하도록 하죠.

 

- 이전까지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이 나눠진 형태로 국가는 형성되어있지 않음

- 1521년 포루투갈의 페르디난드 마젤란 (Fernão de Magalhães)이 세계일주 항해도중 세부섬에 상륙함 (이후 유럽세계에 알려짐)

- 1567년 스페인의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Miguel López de Legazpi)가 세부섬에 도착, 세부섬을 최초의 식민지로 구축

- 1571년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마닐라를 식민지의 수도로 선언하고 초대 총독이 됨

- 1573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 (Felipe II de Habsburgo)의 왕령으로 인트라무로스의 건설을 시작함

- 1606년 인트라무로스의 완공

- 1896년 호세리살의 처형 (당시 필리핀인들은 스페인 식민지를 청산하고 독립하는것을 열망함)

- 1898년 필리핀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함

- 1898년 스페인이 필리핀 통치권을 미국에 이양함 (미국-스페인전쟁의 결과로 파리강화조약이 체결됨)

- 1899년~1902년 필리핀-미국전쟁 발발 (필리핀인들은 독립을 바라고 있었지만 또 다시 미국에 의해 식민지화 되는것에 대한 저항)

- 1934년 미 의회에서 10년후인 1944년에 필리핀의 독립을 승인함

- 1935년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고 연방 초대대통령에는 (현재 필리핀정부에서 인정하는 순서로는 2대 대통령) 마누엘 케손(Manuel Luis Quezon y Molina)이 임명됨

- 1942년 일본군이 마닐라를 점령함

- 1945년 미군이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 Labanan sa Maynila)를 통하여 마닐라를 탈환함. 그러나 이 전투로 인트라무로스의 대부분시설은 파괴되었음.

- 1945년 마닐라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이 퇴각도중 마닐라의 민간인에게 약탈, 강간, 학살을 자행하였던 마닐라 대학살 (Manila Massacre, Masaker sa Maynila)이 일어남.

- 1946년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하고, 필리핀공화국 (Republic of the Philippines, Republika ng Pilipinas)이 수립됨

 

 

인트라무로스에는 두개의 중요한 광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이곳 로마광장 (Plaza de Roma)은 스페인 식민지시절 도시의 중심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남쪽에 마닐라대성당, 서쪽에 인트라무로스 관리국, 동쪽에는 재무국이 위치하고 있을정도니, 위치상으로도 도시의 중심이 맞나봅니다)

지금 모습은 조그만 광장에 불과하지만, 식민지시절에는 이곳에서 투우경기나 다른 축제가 벌어졌고, 총독 취임식등의 행사도 거행되었다고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광장의 중심에는 식민지시절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카를로스 4세의 동상(King Charles IV Monument)이 세워져 있습니다.

카를로스 4세는 재임중에 필리핀에 천연두가 유행중이라는 보고를 듣고 백신을 보낼것을 지시하였다고 하는데, 그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1824년에 동상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필리핀은 332년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 기간동안 거쳐갔던 국왕을 찾아봤더니 총 18명이더군요.

 

합스부르크 왕가 (Casa de Austria)
펠리페 2세 (Felipe II, el Prudente) : 1556년 1월 16일 - 1598년 9월 13일
펠리페 3세 (Felipe III, el Piadoso) : 1598년 9월 13일 - 1621년 3월 31일
펠리페 4세 (Felipe IV, el Grande o el Rey Planeta) : 1621년 3월 31일 - 1665년 9월 17일
카를로스 2세 (Carlos II, el Hechizado) : 1665년 9월 17일 - 1700년 11월 1일

 

부르봉 왕조 (Casa de Borbón)
펠리페 5세 (Felipe V, el Animoso) : 1700년 11월 16일 - 1724년 1월 14일
루이스 1세 (Luis I, el Bien Amado o el Liberal) : 1724년 1월 14일 - 1724년 8월 31일
펠리페 5세 (Felipe V, el Animoso) : 1724년 9월 6일 - 1746년 7월 9일
페르난도 6세 (Fernando VI, el Prudente o el Justo) : 1746년 7월 9일 - 1759년 8월 10일
카를로스 3세 (Carlos III, el Político o el Buen Alcalde de Madrid) : 1759년 8월 10일 - 1788년 12월 14일
카를로스 4세 (Carlos IV, el Cazador) : 1788년 12월 14일 - 1808년 3월 19일
페르난도 7세 (Fernando VII, el Deseado o el Rey Felón) :  1808년 3월 19일 - 1808년 5월 6일
카를로스 4세 (Carlos IV, el Cazador) : 1808년 5월 6일 - 1808년 6월 6일

 

보나파르트 왕가 (Casa de Bonaparte)
호세 1세 (José I, Pepe Botella) :  1808년 6월 6일 - 1813년 12월 11일

 

부르봉 왕조 (Casa de Borbón)
페르난도 7세 (Fernando VII, el Deseado o el Rey Felón) : 1813년 12월 11일 - 1833년 9월 29일
이사벨 2세 (Isabel II, la de los Tristes Destinos o la Reina Castiza) : 1833년 9월 29일 - 1868년 9월 30일

 

사보이 왕조 (Casa de Saboya)
아마데오 1세 (Amadeo I, el Rey Caballero) : 1871년 1월 2일 - 1873년 2월 11일

 

스페인 제1공화국 (Primera República Española) : 1873년 - 1874년

 

부르봉 왕조 (Casa de Borbón)
알폰소 12세 (Alfonso XII, el Pacificador) : 1874년 12월 29일 - 1885년 11월 25일
알폰소 13세 (Alfonso XIII, el Africano) : 1886년 5월 17일 - 1931년 4월 14일

 

 

 

 

 

 

마닐라 대성당 (Catedral Basílica Metropolitana de Manila, Metropolitanong Katedral Basílika ng Maynilà)은 이곳 로마광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였는데요.

많은 관광객이 그 성스러움과 로마네스크 (Romanesque Revival architecture)와 비잔틴 (Byzantine Architecture)이 혼합된 아름다운 건축양식에 매료된 표정이었습니다.

 

지난 1월에는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 PP) 필리핀에 사목방문(Pastoral visit) 하셨는데, 소 바실리카 (Minor basilica)로 지정된 이곳에서 머물면서 미사를 집전하였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전체인구의 83%가 카톨릭 신자라고 하는데, 대성당 주변에는 아직도 교황의 방문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는 포스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방문기간 5일동안 필리핀은 임시휴일로 지정되었으며, 그 기간동안 교황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로 인해 이 주변 교통은 마비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인근 리잘공원에서 집전된 교황의 마지막 행사인 야외미사에는 총 60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하는데, 동원된 경찰병력은 성인용기저귀를 차고 근무했다는 웃지못할 일화도 있습니다.

 

 

성당 출입구에는 'TIBI CORDI TUO IMMACULATO CONCREDIMUS NOS AC CONSECRAMUS'라는 문구가 젹혀있었는데, 어떤뜻인지 궁금해서 한참동안 라틴어 번역기를 돌려보았는데요.

자연스럽게 해석되지는 않지만 'To your Immaculate Heart, we commit and dedicate' 즉 '티 없이 깨끗한 성모의 성심을 향해 우리는 헌신하고 봉헌한다'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겠더군요.

아마도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과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한 일종의 표어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겠더군요.

 

 

성전에 들어서니 많은 분들이 각자의 사연에 따라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시는분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히 성전이 잘 보이는곳에서 (카톨릭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의를 갖춰 목례를 하고 몇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성당은 앉아서 기도를 하도록 길다란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반면에 동남아 지역의 성당은 대부분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하는 좌석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같은 카톨릭 성당인데 이런 차이는 민족이나 사회적인 관점에 따라 다른건지 궁금하더군요. 아시는분 계시면 댓글 부탁드려요)

 

 

 

천주교나 개신교의 신자였다면, 이 조각이 얼마나 성스럽고 귀중한 의미인지 잘 아실것 같아서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저 또한 한때는 그 누구보다 그 의미를 잘 알았지요)

 

 

다시 성전을 나와서 둘러보니 미사가 집전되는 시간, 사무실 업무시간 등이 세세하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카톨릭 신자분이라면 마닐라 여행하실때 시간 맞춰서 마닐라 대성당을 방문해보는것도 좋을듯 합니다)

 

 

저는 마닐라대성당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곳에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시간 모진 풍파를 견뎌낸 역사를 가지고 있더군요.

 

- 1581년 니파야자 (Nypa fruticans)와 대나무를 엮어 최초의 성당을 건축함

- 1582년 태풍으로 건물에 손상이 생김

- 1583년 화재로 소실됨

- 1592년 석재를 활용하여 두 번째 성당이 건축됨

- 1600년 지진으로 성당이 붕괴됨

- 1614년 세 번째 성당이 건축됨

- 1645년 지진으로 성당이 붕괴됨

- 1654 - 1671년 '참으로 아름다웠던' 네 번째 성당이 건축됨

- 1863년 지진으로 성당이 또 다시 붕괴됨 

- 1870 - 1879년 건축가 Luciano Oliver가 다섯 번째 성당이 건축됨

- 1945년 마닐라 전투로 인하여 소실됨

- 1954 - 1958년 일곱 번째 성당이 건축됨 (필리핀 건축가 페르난도 오캄포가 설계하고 바티칸의 원조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재연함)

- 2012 - 2014년 내진설계 적용 및 CCTV, 실내외 기자재를 설치한 리노베이션이 진행됨

 

 

과거 필리핀을 점럼했던 국가 (스페인, 미국, 일본)의 국기와 필리핀 국기가 동판에 새겨져 성당 한쪽벽면에 걸려있었는데요.

거리가 조금 멀어서 자세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4세기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필리핀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더군요.

 

- 스페인 (1567 - 1899년) : 인트라무로스설치, 스페인어 및 카톨릭 전파, 필리핀인들에 대한 차별대우, 양극화 심화

- 미국 (1899 - 1942, 1945 - 1946년) : 필리핀-미국전쟁, 필리핀인에 대한 인권보장, 공중보건 개선, 남녀평등, 토지정책, 교통통신, 자유무역 등 사회 전분야에 걸친 발전기회 제공

- 일본 (1942 - 1945년) : 미군과 내통하는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수많은 양민을 학살함. 특히 마닐라 전투기간동안 도시전체가 파괴되었으며 퇴각중에 1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함.

 

 

성당의 좌측에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총독관저(Palacio del Gobernador)가 자리잡고 있으며,

역시 마닐라전투에서 소실되었던 건물을 이전모습대로 복원하여 현재 인트라무로스 관리국(Intramuros Administration)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성당에서 우측에 위치한 하얀색 건물은 식민지 시절에 마닐라 시청사 (Ayuntamiento de Manila)로 사용하던 건물이고 현재는 재정국 (Bureau of the Treasury)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인트라무로스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한적한 공원이 있기에 들어가보니 그곳에 마닐라 전투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The Memorare Manila Monument)가 세워져 있더군요.

처음에는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비석에 적힌 글을 천천히 읽다가 'OVER 100,000 MEN, WOMEN, CHILDREN AND INFANTS KILLED'라는 문구에서 가슴이 턱하고 막히더군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아시아 전역에 해왔던 악행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진곳에서도 치를 떨도록 잔인한 짓을 했다는것에 경악해야 했습니다.

 

돌아와서 자세히 알아보니 미군은 마닐라를 탈환하기 위해 마닐라 전투 (The Battle of Manila, Liberation of Manila, Laban ng Maynila ng 1945)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에 일본군은 카미카제 전술로 (그러고 보면 일본 전술은 그것뿐인듯..) 마닐라지역에서 끈질기게 버텼다고 하지만 퇴각을 결정하게 되면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일본군은 마닐라에 남아있던 민간인 70만명이 미군에 호의적일것이라 가정하고, 그들의 미군에 대한 협조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였다고 합니다.

마닐라 대학살 (Manila Massacre, Masaker sa Maynila)로 인해 사망한 민간인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약 1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미군의 공격에 정신없이 도망가는 주제에 죄없는 민간인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은데, 일본은 아직까지도 갖가지 핑계를 대며 사건을 축소하려 애를 쓰고 있다고 하네요.

일본의 만행에 대한 어떠한 사과도 없이 미국의회에서 당당하게 고개를 처들고 연설하셨던 아베씨, 그리고 우익 추종자씨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이 두렵지 않나요?'

 

 

인트라무로스 여정의 마지막으로 인근에 위치한 산티아고 요새 (Fort Santiago, Fuerte de Santiago, Moog ng Santiago)를 찾아왔습니다. (길을 몰라서 차를 타고 왔다는건 비밀~)

입구에서부터 많은 마차꾼들이 '내 마차를 타줄래, 싸게 태워줄게' 등의 호객행위를 하는데, 이분들 거머리보다 더 집녑이 강하니 조심들하시고요. (날씨만 좋다면 걸어다니기 딱 좋아요)

 

입구쪽 벤치에 왠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Douglas MacArthur)의 모습과 비슷한 동상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알고보니 맥아더 가문은 필리핀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는 필리핀의 총독(Governor-General of the Philippines)을 지낸 아서 맥아더 2세 (Arthur MacArthur Jr.)이고,

맥아더 장군 본인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필리핀 정부의 군사고문을 지내다가, 1937년 필리핀 육군 원수 (Field marshal)을 지냈다고 합니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될 수 있도록 가장 많은 역할을 했던 것은 대규모 군사가 아닌 바로 이 수도사들이라고 하더군요. (때로는 힘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강하다는것을 느끼게 됩니다)

 

 

산티아고 요새는 의외로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한적하게 산책하기 딱 좋은곳이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보면 인트라무로스에 남아있는 해자 (Moat, Foso)는 이곳만 남아있는것 같더군요. (다른곳은 골프장이나,  ASEAN Gardens 등의 시설로 바뀐듯 합니다)

물이 따로 흘러오거나 흘러나가지 못한탓에 상당히 탁하고 역한냄새도 났지만 그래도 생명체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곳 산티아고요새는 인트라무로스의 북쪽, 파시그강 (Pasig River, Ilog Pasig) 하구에 접해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미군, 일본군이 이곳에 주둔하거나 이곳을 거점으로 활용하였을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스페인은 이곳을 통해 성안으로 출입하려는 필리핀인들을 철저히 통제하였고, 일본군은 이곳에서 많은 필리핀인들을 수감하거나 처형하였으니 그다지 기분좋은곳은 아닙니다.

 

 

검색을 하던 중 마닐라 전투당시 이곳 성문에 돌진한 M4 셔먼 (M4 Sherman) 전차의 사진을 발견했는데 (바로가기) 당시 마닐라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피해가 심해보이더군요.

필리핀 정부는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기 위해서 1950년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검게 그을린 부분이 오랜세월의 흔적인지, 전쟁의 상흔인지 알수 없지만, 약 400년 세월동안 이 성문은 변함없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겠지요?

 

 

 

 

성문안에 들어서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원래부지는 이보다 훨씬 컸다고 하는데, 1863년 지진이후 재건된 광장이 지금 모습이라네요) Plaza de Armas와 마주하게 됩니다.

산티아고 요새의 시설물은 이 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정면에 호세 리살 동상이 보이고 좌측에 리잘기념관 우측에 감옥으로 쓰였던 터가 남아 있습니다.

 

 

 

 

 

감옥터로 걸어가면 그 옛날 이곳을 지키던 병사들이 보초를 서기 위해 걸어갔을 법한 길을 오르게 되는데, 성문의 윗부분과 연결되어 전경을 감상하기 좋았습니다.

 

 

 

이 길의 끝부분에는 파시그 강 (Pasig River, Ilog Pasig)의 전경을 내다볼 수 있는 곳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글쎄요 전경이라고 하기엔..... -_-;)

 

 

Baluarte De Santa Barbara

1592년에 파시그강 입구를 지키기 위해 건설된 포병기지라고 하는데요. 1904년에는 미육군 본부가 건설되었고, 1942년에는 일본군이 점령했다고 합니다.

일본군은 여기에서도 잔혹한 행위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곳의 지하창고를 감옥으로 개조하여 수백명의 필리핀인을 살해하였다고 하네요.

이 건물 역시 마닐라 전투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1951년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근처에는 앞서 언급했던 사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비석과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일제의 미치광이 같은 만행이 미치지 않은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추모비를 보면서 잠시 묵념하는동안 속으로 일제의 만행에 대해 아는욕을 퍼부어 주었더니 조금 속이 풀리는것 같네요. 

 

 

위령비 근처에는 감옥터가 하나 있는데, 감옥에는 처형을 당하기전 담담한 모습의 호세 리살의 표정을 닮은 마네킹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호세 리살은 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의 다수가 주장했던 무장투쟁론에 반대하고, 스페인의 개혁과 자치제도를 주장했다고 합니다.

원래 의사가 되기를 소망하고 스페인에 유학을 갔던 지식인이었는데,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나타낸 그의 소설 '놀리 미 탕그레'가 그의 인생을 바꿔버리게 되었습니다.

소설이 유명해질수록 스페인의 지식인에 의해 스페인 식민지통치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의 소설은 불온서적이 되었고 스페인에서 추방당하여 귀국하였고,

이후 필리핀 민족동맹을 결성하여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던 중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체포될 당시 무장투쟁자들의 필리핀 혁명의 배후로 지목받았고 이곳에서 현재의 리잘공원으로 이동해 공개 총살형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무장투쟁론에 반대하던 호세 리살을 무장투쟁의 배후라고 지목하고 처형할 정도였으니, 스페인에서는 어지간히 껄끄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사후 그에게 영향을 받았던 많은 청년들은 독립을 위해 거리로 뛰어나왔다고 하며, 그가 죽은 12월 30일은 국경일로 지정되어 그를 기리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별 - 호세 리살이 처형당하기 전날 남긴 시'

안녕, 사랑스런 나의 조국.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조국 필리핀에,
내가 밟았던 그 땅에
내 삶의 깊은 사랑을 남기고 가네.
나는 가려네.
고문하는 사람도 없고,
압제자의 권력이 반드시 파괴되는 그 곳으로.
신념 때문에 죽지 않고, 신이 다스리는 그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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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감옥 앞에는 이렇게 호세리살의 마지막 걸음 (Last Walk to Martyrdom Trail)을 만들어 마지막 발자취를 기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니 근처에 호세 리잘 기념관 (José Rizal Shrine)이 있더군요.

사실 우리나라 독립지사분들도 잘 모르는데, 다른나라의 독립지사 기념관까지 찾아가는건 이치에 맞지 않는것 같아서 겉만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에는 '당신을 만난건 행운이야',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솔로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어 버리는 꽃말을 가진 플루메리아 (Plumeria)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괌이나 세부에 있던 마트에서 머리핀이나 조화로는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실제로 나무에 매달린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실제 꽃이 더 아름답더군요.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길에 정원이 너무 멋져보여서 한장 찍어보고요.

 

 

바닥에는 새X이 한가득이었지만, 하얀색 비둘기가 상당히 많이 보였던 새집도 한장 찍어보았고요.

 

 

기와만 씌워놓으면 왠지 육각정이랑 닮아보이는 쉼터도 구경해봅니다. (현지인에 대한 경계심때문에 가까지 가지는 못하고.. 주변에서만 ㅋㅋㅋ)

 

 

 

이렇게 마닐라의 유적을 골고루 돌아보았는데, 당시에는 잘모르고 지나갔던 풍경들도 포스팅을 하면서 하나도 사소하지 않은것이 없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외세의 침략속에 살아왔고, (반성도 모르는 악의축) 일제의 침략을 받아 무고한 많은 시민들이 참혹하게 살해되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까지 아시아의 경제를 주름잡던 나라로 (바록 독재자의 욕심으로 개도국으로 전락했지만) 발전한데는 이곳 필리핀 국민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전쟁으로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빌며, 이 나라에 더 이상 전쟁의 상흔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빨리 개도국을 벗어나서 모두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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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필리핀 | 마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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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hosii.info BlogIcon 반쪽날개 2015.05.03 01:53 신고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식민지화 되었던 때가 있었던 만큼, 그와 관련된 유적들도 흔하게 보이지 않나 싶다.
    지금에 와서야 큰 부담없이(?) 저런걸 보고있다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감도 안온다.
    그때를 잊지 않고 앞으로를 계획해야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데, 옆동네 어디는 영... 그럴 기미가 안보여서 좀 거시기 하더라고=_=;;;
    (하긴 옆동네는 전범국가여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_=; )

    그나저나, 필리핀은 한때 스페인 식민지여서인지, 여기저기서 중세 유럽풍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구만.
    얼핏보면 유럽에 온 기분도 들겠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thebluesky.info BlogIcon Trippe_Park 2015.05.03 02:22 신고 여행을 계획할때까지만 해도 인트라무로스가 스페인의 식민지라는 것만 알았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곳인지는 곳인지 몰랐어.
    지나가면서 표지판, 비석에 새긴 글을 더듬더듬 해석하면서 그들의 절규가 들리는것 같아서 둘러보는 내내 참 뭐라고 표현이 안되더라.
    내가 뭣도 모르면서 단순히 관광지라고 찾아온 온 이방인이기 때문에 희생사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할 방법은 그저 묵념하면서 옆동네 정신나간 X들에게 속으로 욕하는것 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자기 멋대로 점렴하더니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니 도망가는 주제에 양민학살이라니 미쳐도 보동미친게 아니지...
    거기다 다른것도 아니고 진심어린 반성을 하라니까 축소하거나 외면하는 그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종자들인지 연구대상이야.

    인트라무로스지역이 스페인이 점령해서 중심지, 스페인인이나 혼혈인들의 거주지로 쓰였기 때문에 중세 유럽풍 건물이 많은데,
    사실 마닐라 전투때 폭격을 받아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가 종전 후 재건한 것들이라고 하더라.
    (비가 거세져서 가볼 수 없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 아구스틴성당만 유일하게 처음 모습그대로 남아있으니 이건 예회)

    마차를 끌고나온 호객꾼 때문에 유럽에 온 느낌은 전혀 느낄 수 없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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