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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ghai 2008 : 매원(梅园),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 본문

Footprint in the World/2008 PVG&YNJ.CN

Shanghai 2008 : 매원(梅园),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

Trippe_Park 2014.10.21 05:52

이전글 : Asiana Airlines OZ361 (ICN/RKSI → PVG/ZSPD, 25 AUG 2008)


카메라의 화소문제로 화질이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항을 빠져나온 버스는 푸둥신구 (浦东新区)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이 많이 거주 중이라고 하는데, 구 도심에 거주중인 시민과 빈부차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사실 겉보기로는 그렇게 특이해 보이지 않는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서, 이 때까지는 가이드님의 설명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상하이의 동서를 (다른 의미로는 구도심과 신도심)을 나누고 상하이의 중요한 수원의 역할을 담당하는 황푸강 (黄浦江) 이라고 합니다. (많은 선박이 다니고 있어서 바다로 착각 할 번 했습니다.)

황푸강은 타이후 (太湖)에서 발원하여 흔히 양쯔강 (扬子江) 으로 불리우는 장강 (长江)을 거쳐 동중국해로 (东中国海) 흘러들어가는 최후의 지류라고 합니다.



신세계 이마트가 (易买得) 1997년 중국에 최초로 진출하여 개점한 취양점 (曲阳店)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중국내 현지화가 실패하여 중국내 10개의 법인에 대하여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자금을 수혈하는 등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꼭 이마트를 들리는데)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중국에서 '랄랄랄라~ 이마트♪' 노래가 울려퍼질거라고 믿습니다.



본격적인 일정에 앞서, 홍커우구 (虹口区, Hongkou)에 위치하고 있는 홍동한국요리 (红东) 식당에 들러서 점심식사를 먹고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깔끔한 실내와 한국인 사장님의 친절함이 인상 깊었는데, 포스팅을 위해 다시 찾아보니 상해를 찾는 여행객들은 한번씩 찾아오는 인기 식당이더군요.



제가 밥 한공기를 (두 공기던가?) 뚝딱 해치웠던 메뉴는 홍동불고기 (사진에 나온 메뉴가 맞는지는 몰라요, 기억이 가물가물 ㅜ)인데, 나중엔 맨입에 긁어먹을만큼 정말 맛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찾아온 곳은 루쉰공원 (鲁迅公园)이며, 우리에겐 홍커우공원으로 (虹口公园) 더 잘 알려진 곳 입니다.


루쉰을 존경했던 마우쩌둥(모택동, 毛泽东)이 홍커우공원에서 문학가인 루쉰의 이름을 따 루쉰공원으로 변경하였다고 하는데,

1956년 다른곳에 매장된 루쉰의 시신도 이곳으로 이장하고 기념관을 성대하게 세울만큼 존경심이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저희 일행은 마오쩌둥이 루쉰을 존경했던것 보다 더 존경해야하는 그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는데요.



그 분은 만 24세의 젊은 나이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윤봉길 의사입니다. (제가 이곳에 방문했을때, 제 나이가 만 25이었으니 절로 부끄럽고 숙연해지더군요.)

매원은 (梅园) 윤봉길 의사의 호인 매헌(梅軒)을 따서 명명한 정원이며, 이곳에는 기념관 역할을 하고 있는 매정으로 (梅亭) 명명된 정자와 8만 그루의 매화나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개최된 일왕의 생일연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에서 물통 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쓰구 등이 사망하고, 총영사 무라이는 중상,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 중장은 실명 하는 등 실로 통쾌한 업적을 남긴 현장입니다.



제 블로그에서 사진을 보시는 분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희생이 없었으면, 인터넷을 통하여 자유롭게 소통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있었을까요?)



사진으로 접했던 루쉰기념관에 비하여 초라해 보일 정도로 규모가 작던 매정의 입구입니다.

이 정자는 1994년 건립되었고, 1995년 주변에 매화나무 8만 그루를 심게 되면서 매원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매원을 조성한것은 우리나라 정부도 국민도 아닌 당시 상하이 시정부 부처장이었던

한 중국인의 노력의 산물로 완성되었다고 하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또 한번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도시락 폭탄과 매헌 윤봉길 의사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 - 장제스 (장개석)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 윤봉길 의사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1962년 3월 2일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서 추서한 건국공로훈장이며, 윤봉길 의사의 장남이신 윤종님께서 대신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곳 매정에 있는것이 진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밖에도 윤봉길 의사와 관련된 많은 기념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니, 상하이를 여행하는 분들은 꼭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매원을 나오며 한적한 루쉰공원의 풍경을 한장 남겨봅니다.

지금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약 80년 전에는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걸었던 스물네살 청년의 불같은 열정이 서려 있는곳이라는 사실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현대 국가인 대한민국 역사의 시작이자 정부조직의 효시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 (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 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1919년 4월부터 1932년 5월까지 임시정부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윤봉길 의사의 의거이후 임시정부에 대한 감시가 심해져 이후 항저우, 난징, 광저우 등 남부지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총 10번의 이동중 상하이, 항저우, 충칭에만 임시정부 유적지가 복원이 되었고, 그중에 규모나 방문객이 제일 많은 곳은 이곳 상하이라고 합니다.)



내부에는 사진촬영이 허락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유적지 보호를 위해 덧신을 착용하여야 하더군요.

번거롭고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한것이니 흔쾌히 카메라를 가이드에게 맡겨두었습니다.



임시정부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대략 이 골목에서 느낄 수 있는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상당히 좁고, 낙후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조국독립을 위해 기꺼이 싸우신 순국선열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편 '임시정부를 독립운동단체로 봐야하는가?' 또는 '정부조직으로 인정해야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걸로 압니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임시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정부가 있을 수 있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정부조직'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은 다양한 상하이의 모습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금방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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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hosii.info BlogIcon 반쪽날개 2014.10.21 15:45 신고 비오는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고생했겠다.

    중국에 이마트가 있다는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중국어 간판이 좀 어색하긴 한데, 이마트 특유의 노란간판과 글씨체는 우리나라 이마트 간판이랑 똑같네~.

    윤봉길 의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투사분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겠지~.
    해방 직전, 그동안 일본과의 전면전을 위해 전쟁준비까지 다 끝내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일본이 패망을 선언 해버린 탓에 그동안의 한풀이도 못하고 찜찜한 광복을 맞이했다는게 엄청 억울하긴 하지만...

    임시정부는, 해방 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상해, 만주 등 여러군데에 있었는데, 상호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러 임시정부들 모두 조국 독립과 독립 후 나아갈 길을 연구하고 대한민국의 지도자 선정을 놓고 의논했던 것은 사실이니,
    단순한 독립운동 단체라기보단 하나의 정부조직으로 보는게 맞을 듯 싶다.

    임시정부 내부로 카메라 반입이 안된다는게 아쉽긴 하지만, 현장 보존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thebluesky.info BlogIcon Trippe_Park 2014.10.21 17:18 신고 중국의 이마트는 1997년 첫매장이 오픈해서 지금은 25개의 매장과 10개이상의 법인이 있다고 하는데,
    제주에 여행온 중국인 관광객이 항상 이마트에서 쇼핑하는것과 대조적으로 중국내 이마트는 현지화에 실패했다는 반응인가봐.

    진짜 저기가서 윤봉길 의사의 처형당시 나이가 그렇게 젊었다는걸 새삼 다시 느꼈다.
    군대가기 싫고, 예비군 귀찮다고 툴툴거렸던 스스로도 반성이 되더라.
    (살만큼 다 살아봤다는 나이가 되서도, 내 한목숨 나라를 위해 바친다고 용기있게 나서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임시정부는 정말 많은곳에 따로 존재했지만, 결국 1919년 9월 기준으로 모든 임시정부가 상해임시정부로 통일되었다고 보는게 맞을거야.
    (만주에 있던 임시정부는 그 이후에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일본군 저항기지의 역할에 집중했었다고 해)
    그래서 망명정부형태를 띈 근대화 된 정부조직으로 보는 것 이 맞는데,
    일부에선 국민, 국토, 주권이 없어서 근대화된 정부조직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반응도 있어.
    누구의 말이 옳든간에 그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도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니 상징적인 최초의 정부로 인정해야한다는 것이 내생각임.
    아무래도 시설이 많이 노후화되었고, 사진을 촬영이 허용된다면 인터넷에서 사진만보고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우리나라도 아니고 해외에서 십시일반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곳이니 우리나라의 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이들 찾아가야 할 듯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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